가족여행(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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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요한 피정의 집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사람은 늘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리 결혼을 했어도, 자식이 생겼어도 혼자일고 싶을 때가 있다. 무슨 고민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나는 혼자이고 싶다. 늘 익숙한 환경, 그리고 사람들을 벗어나 그들 ㄹ존재가 나에게 무었이었는지,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를 그나마 3자 입장에서 느끼고 싶었다. 4월 3일 남들은 모두 출근한 시간에 차를 끌고 새로 생긴 춘천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성요한 피정의 집. 수사님들(로렌스, 스테판, 라파엘, 키릴)과 같이 공동 생활이 시작되었다. 강촌 IC 에서 빠져 나와서 곧바로 좌회전 하고 200 m 앞에서 다시 죄회전(좌방산 토종닭 간판을 보고 길을 따라가면 좌측에 보입니다. 건물은 크게 두 군데가 있습니다. 아래 사진도로길 옆..
2012.04.07 -
1일차-8.임해전터(안압지)야경
대릉원,첨성대와 가까운,신라 전성기의 유적지이다. 안압지로 더 많이 유명한 이곳은 임해전터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임해전은 문무왕 14년인 674년에 세운,신라 태자가 머물던 동궁의 중심 건물로 ,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연못과 터인데,조선시대 이 연못에 기러기(안)과 오리(압)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이름붙인 것이 안압지이다. 임해전은 바다에 접해 있다는 말인데,연못을 바다처럼 여기고 연못 안에도 실제처럼 군데군데 섬을 만들었다. 밤에 보아서 안보였지만 물을 가두었다 뺐다 하는 구조로 구멍과 물마개도 있다고 한다. 임해전은 중심건물은 어디 있었는지 알 길 없고 건물터만 남아 있는데 거기에 정자를 새로 지어 연못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헌덕왕때에는 월지궁이라고도 불려,우리가 보는 연못을 월지 라고도 불렀..
2010.08.22 -
1일차 8/16일 점심식사와 저녁식사,황남빵
점심식사는 대릉원 근처 숙영식당 찰보리 비빔밥 1인분 8천원. 강된장과 고추장,된장국을 넣어 비벼 먹음.맛있고 반찬도 정갈하고 가짓수도 다양함. 만족스런 점심식사. 저녁 산해식당 석쇠구이 정식,1인분 7천원,4인분 먹고 2인분 추가함. 밥은 따로 시켜야 함. 된장찌개가 나오긴 하는데,반찬도 몇 가지 안되고 된장도 그저 그렇고 가격대비 보통. 황남빵 세민이는 맛있다고 난리.팥소가 많이 들어있고,그렇게 많이 달지 않아서 먹을만했다. 황남빵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안압지 야경을 보러 감.
2010.08.22 -
1일차-7.진평왕릉,신문왕릉,선덕여왕릉
순서상 신문왕릉이 선덕여왕의 뒷편이나 선덕여왕릉을 찾지 못해 먼저 보이는 신문왕릉을 먼저 들름. *진평왕릉 백성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는 진편왕은 농가와 논들이 가까이 있어 옛날엔 그가 사랑한 백성들이 쉽게 찾아볼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우리가 갔을 때에는 인적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진평왕릉에서 보이는 민가 진평왕릉 앞에서 마주보이는 낭산. 얕으막한 저 낭산에 진평왕의 딸인 선덕여왕 릉이 있다. *신문왕릉 낭산 동쪽에 위치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고구려,백제의 귀족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고,일본과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군사,문화교류를 활발히 하여 신라의 황금시대를 이룬 왕이다. 무덤 아래부분 탄탄하게 쌓은 아랫돌과 사다리꼴 모양의 호석들. 이렇게 돌무지가 무너지지 않게 누름돌을 세우는 기..
2010.08.22 -
1일차-6.포석정지와 나정
경애왕이 신하들과 술판을 벌이다가 후백제 견훤에게 급습을 받았다고 삼국사기에는 전해지지만 그때가 음력 10월,겨울초입임을 생각하면,또한 신라말 혜공왕으로 태종무열왕계의 직계가 끊어지고 진골귀족들이 왕위쟁탈전을 벌이던 때에 들어선 박씨왕가였기에 그 진위는 의심스럽다.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역시 경주김씨였다.그리고 일제침략기 우리 역사를 흠집내려는 일본에 의해 왜곡되었을 거란 학자들의 의견이다. 박씨는 신라 시조 이후 7대까지,말기 3대 왕까지가 전부다. 혜공왕 이후에는 진골귀족출신이 왕위에 올랐고,서로 왕이 되려고 하는 진골귀족들의 싸움으로 그 재위기간도 짧다.경애왕의 재임기간은 3년이다. 포석정지는 넓은 평지에 오래된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시원했다. 별궁의 터만 남아 역사책에서 본 그 전복모양의 돌..
2010.08.22 -
1일차-5.태종 무열왕릉과 서악동 고분군,김인문과 김양묘.
문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무열왕릉비가 있다. 아니,비석은 사라지고 비석을 받치고 있던 거북받침(귀부)과,비석의 머리부분을 장식하던 이수(교룡으로 장신된 머리) 가 있다.귀부의 조각도 훌룡하고,이수는 6마리 용이 1개의 여의주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3마리씩 나누어진 가운데 부분에 '태종무열대왕지비'라고 글씨가 새겨져 있고,이 글씨는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이 쓴 것이라고 한다. 왕릉 들어서는 문. 이수와 거북 이 귀부와 이수는 국보 25호로 지정되어 있다. 크지만 소박한 능. 능 앞에 혼유석이 있고,봉분 아래부분에 군데군데 박힌 호석이 보인다. 저 릉을 지나 위로 왼쪽으로 올라가면 뒷편에 큰 무덤들이 4기 있는데,이곳이 서악동 고분군이다. 이렇게 큰 큐모의 능은 피사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무열왕릉보다 윗..
2010.08.22